'국민건강에 위험한 제도를 막아내겠다'던 대한의사협회가 결과적으로 정부의 원격의료·영리자회사 저지에 실패했다는 비판이 격화되고 있다. 보건의료계열 시민단체들은 '기만적인 밀실협상의 산물'이라며 의·정을 혹평하고 나섰다.
보건복지부와 의사협회는 가장 뜨거운 쟁점사안이었던 원격의료에 대해 우선 안전성·유효성을 검증하기 위해 4월부터 6개월간 시범사업을 진행키로 했다. 시범사업의 기획·구성·시행·평가는 의·정이 공동 수행한다.
하지만 이 같은 시범사업 결과와 관계없이 원격의료를 허용하는 의료법 개정은 계속 추진될 예정이다.
권덕철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관(국장)은 지난 17일 브리핑에서 "원격의료를 허용한 의료법 개정안은 의·정 대화를 위해 국무회의에 상정하는 것을 잠시 미룬 것이다. 조만간 국무회의를 거쳐 국회에 제출돼 입법과정을 거치게 된다. 시범사업에서 나오는 문제점 등은 입법과정에서 반영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시범사업은 혹시 모를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한 것이지, 원격의료의 시행 여부와는 상관없다는 게 권 국장의 설명이다.
이와 함께 의료영리화의 핵심으로 여겨지는 '영리 자법인(자회사) 허용'의 경우 영리자법인 설립 시 진료수익의 편법 유출 등 우려되는 문제점의 개선을 위해 논의기구를 마련하고 이를 통해 의견이 반영된다. 이 논의기구에는 의협·병원협회·치과의사협회·한의사협회·약사회가 참여한다.
의·정 양측 모두 2차 집단휴진 강행에 대한 부담을 의식해 당장은 타협을 이뤘지만 의료영리화 논란은 사그라지지 않을 것으로 관측된다. 원격의료는 6개월 뒤로 본격적 논의를 미룬 셈이고, 영리자회사 설립 역시 '문제점 개선'을 위한 논의기구에 공이 넘겨진 데다 이 같은 의협의 태도 자체에 대한 비판까지 봇물을 이루고 있다.
이러한 의·정 협의 결과가 공개되자, 의협의 '의료영리화 저지' 의지에 주목했던 전문가들은 "결국 정부에 밀렸다"고 날을 세웠다.
지난달 노환규 의협 회장을 중심으로 한 집행부는 1차 의·정 협상에서 '협상단'이 확실히 얻어낸 것이 없다고 보고 총투표를 통해 10일 집단휴진을 실시한 뒤 직접 협상에 나섰으나 보건의료노조는 "1차 합의안과 달라진 것도 나아진 것도 없다"고 혹평했다.
보건의료노조는 성명을 통해 "원격의료 시범사업이 진정으로 의미를 가지려면 시범사업 결과가 나온 뒤 문제점을 살펴보고 허용 법안을 국회에 상정할지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데, 순서가 뒤바뀌어 허용 법안은 국회에 올리고 시범사업을 병행하겠다는 것은 원격의료의 허용을 위한 시간 벌기용 꼼수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는 "원격의료의 입법을 허용해준 것으로 오히려 1차 합의안보다 개악이며, 영리자회사 대목은 정부안을 완전히 수용했다"는 비판을 내놨다. 복지국가소사이어티 공동위원장인 이상이 제주대 교수 역시 협상 결과를 '원격의료·영리자회사 합의'로 해석하면서 "정부의 강공책과 회유에 협상팀이 굴복한 결과"라고 평가절하했다.
따라서 의사들의 집단휴진이 중단되더라도 시민단체들의 반대 투쟁은 지속될 전망이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조 등은 성명을 통해 "2차 협의 결과에서도 시범사업 실시나 진료수익 유출 금지 등과 같은 조건만 있을 뿐, 원격의료와 영리자회사 허용은 그대로 유지됐다. 환자들의 의료비를 폭등시킬 영리화 정책이 의사들과 정부만 만나 밀실협상에서 결정된 것으로, 이는 무효이므로 폐기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편 참여연대와 보건의료단체연합은 18일 참여연대 느티나무홀에서 '정부 의료민영화 정책의 문제점과 시민이 배제된 2차 의·정 협의 분석비판' 설명회를 가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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