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의 탐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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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적 선택, 사회공동체 함께 해결합시다”
코로나19 여파로 우울·불안증 빨간불
정부 차원 치료서비스 접근성 높여야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서 20년 가까이 자살률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최근 몇년 동안 자살률이 계속 떨어졌지만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가정과 국가사회적 어려움이 가중됨에 따라 빨간불이 켜졌다.
한국자살예방협회 제6대 회장인 기선완 가톨릭관동대 국제성모병원 교수(58·정신건강의학과)는 “극단적 선택은 우리 사회가 지닌 여러 문제들의 복합적인 최종 결과”라며 “특정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공동체의 문제로 다루고, 함께 해결하려는 노력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기 회장에 따르면, 극단적 선택은 경쟁적이고 스트레스가 많은 사회적 분위기와 연관이 있다. 한국은 특히 노인의 자살률이 높은데, 노인들의 소외와 빈곤, 만성적인 통증을 비롯한 건강 문제가 노인의 자살에 영향을 주고 있기 때문에 이에 초점을 맞춘 대책이 시급한 실정이다.
양극화에 따른 소득 분배의 문제, 사회 응집력이나 지역공동체의 유지 여부, 과다한 음주나 약물 남용, 우울증과 같은 정신건강의 문제 등이 모두 밀접한 관련성을 갖는다.
지난해 정부가 발표한 ‘자살 실태조사’에 따르면, 고통 받는 상황에서 자신이나 타인의 자살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허용적 태도가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힘든 상황에서 발생한 극단적 선택에 대해 동정하거나 관대한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면서 무엇보다 중요한 생명을 문제 회피나 해결 수단으로 여기게 되는 인식이 증가한 것이다.
기 회장은 “자살자 및 알려지지 않은 자살 시도자 주변에 가까운 사람 5명만 있다고 가정했을 때에도 그 영향을 받는 주변 사람은 몇 배로 증가한다.”고 분석했다.
“국민의 정신건강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중증 정신병적 장애에 대한 이야기만이 아닙니다. 경쟁과 고단한 삶에 지친 사람들이 외로움과 절망에 빠지고, 이런 증상이 심화되어 자신이 우울증에 걸린 줄도 모르고 술 한잔에 시름을 달래다가 인생을 포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원인은 복잡해요. 그러나 경쟁사회의 고통과 이에 동반된 정신질환이 한 개인의 인생을 최악으로 내몰기 전에 이 사회의 어떤 도움의 손길이 닿아 약한 고리가 끊어지지 않게 할 수만 있다면 그 사람의 운명은 극적으로 바뀔 수가 있습니다.”
지난해 국무총리가 직접 주도하는 자살예방정책 전담위원회가 신설되면서, 정부의 노력이 보건의 영역을 넘어 공동 영역의 노력이 되어야 한다는 인식 변화가 있었다.
기 회장은 “하지만 근본적이고 세밀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자살은 예방이 충분히 가능하므로 국가적 차원에서 예방을 위한 예산을 늘리고 정책을 정비해 각 치료 서비스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고, 사회적 편견을 줄여 조기에 전문가의 개입이 이뤄지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실제로 극단적 선택은 주변에서 쉽게 관찰할 수 있는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나와는 관계가 없고 나와는 먼 일로 여기는 문화가 만연해 있습니다. 특정 개인의 문제, 즉 한 개인의 회복탄력성이나 정신적 나약함의 문제가 아닌 사회공동체 문제로 다루고 함께 해결하려는 노력이 중요합니다. 자살 예방은 보건영역에서만 해결해야 하는 문제가 아니라 문화, 경제, 예술 등 전 영역에서 함께 동참하고 공동으로 노력해야 해결이 가능합니다.”
기 회장은 연세대 의대를 졸업하고 충남대 의과대학원에서 자살 연구로 의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한국중독정신의학회 이사장,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정신보건위원회 이사, 가톨릭관동대 국제성모병원 기획조정실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는 중앙정신건강사업지원단 위탁책임자, 인천 서구정신건강복지센터장으로 활동하며 지역사회 정신 건강, 알코올 중독 치료, 자살 예방 분야에 큰 관심을 갖고 지속적으로 소통하고 있다.
현재 자살예방협회는 중앙자살예방센터를 중앙정부로부터 위탁받아 운영하고 있으며 자살 예방 관련 인식 개선을 위한 교육과 프로그램 개발, 농약안전보관함 보급사업, 예방 관련 종합학술대회 개최를 주요 사업으로 진행하고 있다.
관련 단체들과 연대해 제도적 개선을 위한 정책적 제안과 언론 홍보 활동을 하면서 중추적 역할을 수행한다.
“극단적 선택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고치고 이에 대해 올바르게 이해하며, 고위험군을 발견했을 때 적절하게 대처할 수 있도록 인식 개선과 홍보 활동을 지속적으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농촌지역에서 잘못된 수단으로 쓰이는 농약에 대한 접근성을 낮추기 위해 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의 지원으로 농약안전보관함 보급사업도 계속해 나갈 예정입니다.”
우울증의 관리는 자살을 막는 중요한 핵심 키워드이다. 우울증은 분명 자살의 중요한 원인 중 하나이다. 그러나 우울증을 단순히 개인의 문제라고 치부하는 관점도 바람직하지 않다.
우울증은 일종의 질환이고, 이는 개인의 나약함의 문제는 아니기 때문이다. 하루에도 38명이라는 숫자가 자살로 사망하고 있는 것이 우리나라의 현실이다. 자살 고위험군인 우울증에 대한 지속적인 관리는 중점 실시되어야 한다.
병의원의 문턱을 낮추고 사회적인 편견을 줄여 조기에 치료하고 전문가들이 개입하는 것이 필요하다.
지금은 코로나19 확산으로 전 세계가 혼란에 빠져 있다. 경제적·사회적 취약계층의 어려움이 가중되면 자칫 잘못된 선택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기 회장은 “이런 엄중한 시기에 한국자살예방협회를 맡게 되어 너무나 막중한 책임감을 느낀다.”면서 “그동안 많은 분들의 순수하고 열정적인 노력으로 성장한 협회의 지난했던 과거 노력이 헛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글·박효순 경향신문 의료전문기자(건강과학팀장)
*사진·가톨릭관동대 국제성모병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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