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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을파는 풍물시장 - 유태연 (유태연피부과의원 원장)
  2009-06-11 오전 11:05:00
점심때 장충동 내 병원에서 한 십 분쯤 걸어 내려가면 동대문 운동장에 이른다. 운동장의 옛 모습은 큰 변함없이 아직도 그 위용을 자랑하고 서 있지만 어딘가 기운 빠진 낡은 인상을 지울 수는 없다. 한 걸음 더 들어가 담장 안을 둘러보노라면 가슴 벅차던 옛 추억이 슬슬한 애상이 되어 가슴 밑으로 가라앉는다.

그 넓던 운동장을 반으로 갈라 주차장으로 쓰고 나머지 땅엔 차일을 치고 자칭 풍류시장이라는 고물상과 음식점들이 들어 차있다. 비좁은 통로를 가운데 두고 양쪽으로 들어찬 점포들, 말 그대로 난장판이다.

도대체 이 많은 물건들이 어디에 숨어있다 이렇게 모여 들었단 말인가. 여기저기 볼 것이 너무 많아 어느 한 가지 물건도 차려보기가 쉽지를 않다.
처음 이 장마당에 들어서서 어떤 물건들이 있는지 눈에 불을 켜고 돌아 다녀 보았지만 하도 물건들이 많고 넘쳐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지쳐 떨어지고 말았다.

커피를 한잔 시켜놓고 숨을 돌리는데 문뜩 무엇이 있는지를 찾기보다 무엇이 없는지를 찾는 것이 나을성싶다는 생각이 들어 쓴 웃음을 지었다. 마침 화장실에 들려 나오다 얼핏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았다. 흰 와이셔츠에 감색 정장이 이 분위기에 너무나 어울리지 않는 몰골임을 미처 인식하지 못하였다.

그리고 보니 한 시간여 돌아다니는 동안 점포 주인들의 눈길이 무척 냉랭했다는 느낌이 일깨워졌다. 속으로 그랬겠지. 이건 물건 사러 나온 놈이 아니라 물건 보러 나온 놈일 터이니 별 볼 일 없다고.

처음 이곳을 찾았을 때는 하도 정신이 산란하여 뭘 보았는지도 모르고 점심시간이 거의 끝나갈 무렵까지 헤매고만 다녔나. 그러다가 몇 번 나와 보니 마음의 안정도 찾았고 무질서하게 쌓아놓은 물건들 사이에서 내가 찾고자 하는 물건들을 찬찬히 살펴 볼 여유가 생기던 것이다.

풍물시장 안에서도 나의 관심을 끄는 것은 당연히 고물상이다. 별의별 물건들이 가득 쌓여 있어 처음에는 그 집이 그 집 같아 혼동을 일으켰다. 그러나 여러 번 들르다 보니 그 점포들이 서로 다른 전문성을 갖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청동제품의 실내장식용 물품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곳이 있는가 하면 전화기 무선통신기 등 특수한 물건들만 취급하는 점포도 있다.

중고 바이올린과 첼로, 플롯, 투바 등 음악과 관계있는 가게에서는 오래된 LP판을 같이 취급하고 있었다. 공구 위주로 하는 집, 중고 핸드폰 취급점에 도검과 수석을 주로 취급하는 곳 등 그들 나름의 전문적인 지식을 가져야만 장사를 할 수 있는 점포가 대다수이다. 물건을 쌓아 놓았다고 다 같은 게 아니라 그들 나름대로 물건을 분류하고 전문성을 유지하면서 마찰 없이 운영을 하고 있던 것이다.

내가 그곳을 자주 찾아가는 이유는 간단하다. 물론 물건을 사려고 가는 것이 아님은 분명하다. 그 물건 하나하나를 들여다보면서 그 옛날 이것들의 존재의 과정을 상상하고 이곳까지 굴러 들어오게 된 유전의 과정을 짐작해 보는 재미가 별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한 물건을 보고 한없는 상상력을 펼쳐 한 편의 소설을 쓰는 재미라면 이해가 될까. 대체로 이런 식이다.

시장 한가운데 가면 군장을 파는 집이 있다. 미군용 철모도 있고 각종 계급장, 군화, 수통(허리에 차는), 군모에 탄띠까지 일개 분대쯤 족히 무장시킬 수 있는 물품들이 진열되어있다. 그 중에서 수통에 대한 상상을 펼쳐본다.

휴전이 임박해 전선은 하루에도 몇 번씩 고지의 주인이 바뀌는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7월 말의 무더위는 땀과 진을 있는 대로 짜내 가는데 물의 공급은 시원치 않다. 새벽에 담아 넣은 물이 수통의 바닥을 긴다. 아껴 먹어야 살아갈 수 가 있다. 그때 휴전명령이 하달되어 전투가 중단되고 그 선에서 휴전선이 그어졌다.

전투가 중단된 전선에는 정적이 감돌고 살아남았음에 안도의 큰 숨을 내어쉰다. 한 병사는 참호 밖으로 나와 때 묻은 수건으로 이마의 땀을 닦고 맑은 하늘을 바라본다. 아! 살았구나. 그 병사의 생존의 기쁨을 맛보면서 수통의 마개를 열고 얼마 남지 않은 물을 마지막 한 방울까지 천천히 마신다. 여기에 어떤 소설의 마지막 장면을 오려 붙여본다.

이때 북쪽에서 날아온 저격병의 마지막 총탄이 그 병사의 가슴을 뚫고 지나간다. 병사는 수통을 떨뜨리고 넘어진다. 땅에 뒹굴다 멎는 수통에서 마지막 물 한 방울이 흘러 나와 땅을 적신다. 그리고 그 병사는 갔다. 그때 그 병사의 손에 들려있던 수통. 혹시 그게 저 물건이 아닐까?

이런 식의 환상은 픽션이지만 진열된 고물에서 찾아낼 수 있는 최후의 보석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해본다.
하긴 저 많은 물건 중에 사연이 없는 게 과연 있을까. 모두가 어떤 과거가 있을 터이지만 오로지 우리가 그것을 모른다는 것일 뿐이다.

찾아보면 나올 수도 있겠지만 그건 불가능하다. 오직 나의 상상의 나래에서 잉태되는 환상. 이것이 고물상을 뒤지고 다니는 사람의 취미가 아닐까.
카메라를 주로 취급하는 점포가 있다. 그 옛날 우리가 보았고 실제로 사용했던 헌 카메라들이 공동묘지의 비석 같은 검은 몸체를 나란히 드러내어 놓고 진열되어 있다.

Petri, Pentax, Rolleiflex, Leica, Canon, Contax 등 한 시대를 풍미하던 물건이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왕자는 Speedgraph다. 이 카메라의 이름을 아는 이는 별로 없겠지만 로마의 휴일이란 영화에서 오드리 햅번이 기타로 경찰관의 머리를 내려치는 장면을 찍던 카메라가 바로 Spddegraph다. 일반용 카메라는 아니지만 사진기자용으로는 한때 전 세계에서 그 명성을 날렸던 물건이다.

맥심은 미국 유수의 통신사 사진기자다. 한국에서 남북 간의 전투가 치열하게 벌어지자 동경지사에서 근무하던 그는 제이 먼저 전선에 투입된다. 자의든 타의든 종군기자가 되어 기사도 송고하고 사진도 보내야 한다. 그가 애용하는 카메라가 바로 Speedgraph다. 그런데 이 카메라에는 망원렌즈를 장착할 수가 없다.

따라서 생생하고 실감나는 사진을 얻으려면 현장에 가까이 다가가야만 한다. 사실적인 전투 장면을 얻으려면 일선에서 소총부대와 같이 살아야 한다. 사는 것이 아니라 같이 싸우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다가 적탄에 맞아 한 눈을 잃고 후박취재만 담당한다. 그러나 통증이 멈추지 않아 진통제와 모르핀으로 살다가 퇴직 당한다.

퇴직 후에 계속 한국에 남아 사진을 팔았으나 통통 때문에 마약에 손을 댄다. 돈이 떨어진 그는 마지막으로 애지중지하던 카메라를 팔아 마약을 한 다음 부산 앞 바다에 빠져 생을 마감한다. 맥심, 그가 사용했던 카메라가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쳐 지금 저 위에 있다. 소설 같은 환상이란 이런 식이다.

목제 고가구를 파는 상점에는 나무를 깎아 만든 등잔이 있다. 옛 이야기에 따르자면 한석봉의 어머니가 쓰시던 물건도 될 수 있고 춘향가에 나오는 이도령과 춘향의 섹스, 파티에서 이불이 펄렁 등잔불이 제풀에 꺼졌다는 대목의 조명이라 붙일 수도 있다. 어쨌거나 밤과 등잔불의 연관에서 픽션을 꾸밀 만도 하지 않은가.

저 군복은 다도 한때 입어 보았던 건데 예비군 군복이라는 것이다. 비록 군의관이라곤 했지만 군복무 7년이면 나라에 충선할 만큼은 했다고 자부한다. 예편 후에도 예비군법이라는 것이 제정되어 나이 55세가 넘도록 허구한 날 저 군복을 입고 소집에 응해야만 했다.

그렇다고 큰 불만이 있었던 것은 아니고 국가안보에 필요하다면 하라는 대로 따른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다 오늘같이 70넘은 늙은 나이가 되고 보니 입고 싶어도 저걸 입을 수가 없다. 저걸 입고 나이가 10년쯤 젊어질 수 있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꿰어 입고 싶다. 원래 나라를 지킨다는 놈은 어리숙하고 둔한 놈들이 하는 짓이다.

해외 유학이다 외국 시민권이다. 신체검사 불합격이다 해서 이리저리 빠지는 놈들은 군에 갔다 집어넣어 봤자 나라를 지키기는 어렵다. 돌격 앞으로! 한마디에 총탄이 비 오듯 쏟아지는 전선으로 뛰어나가는, 맨주먹 붉은 피로 수류탄 까들고 적의 탱크 밑으로 파고드는 그런 어눌한 놈이 나라를 지켰고 오늘날까지 지켜 왔던 것이다. 옷걸이에 걸려 있는 군복에서 지나간 군생활의 추억이 주마등같이 지나간다.

자, 이제 점심시간도 끝날 때가 되었다.
나는 환상의 나래를 접고 다시 현실의 세계로 돌아가야 한다.
온갖 사연을 간직한 채 쌓여있는 지난 세월의 공동묘지 같은 이 시장을 뒤로하고 환자들이 기다리는 나의 삶의 터전으로 돌아가야 한다.

이곳도 머지않아 철거 되리라는 신문 보도는 내 가슴을 아프게 한다. 응원의 함성이 메아리치던 성동원두의 서울 운동장. 철거와 함께 사라져 갈 저 많은 세월의 사연들이 나를 안타깝게 한다. 우리 인간들의 지난 세월도 기막힌 사연들도 모두 다 그렇게 사라져 가고 마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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