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릴레이 |
비 오는 날의 개화산 - 홍지헌(서울 강서구 연세이비인후과의원 원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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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지헌(서울 강서구 연세이비인후과의원 원장)
비가 오는 여름날, 우산을 받쳐 들고 개회산 공원 큰 산책로를 따라 걸어 보았다. 비오는 날에는 사람이 다니는 길이 물도 다니는 길이 되므로 바지가 끌리지 않도록 바짓단을 양말 속에 넣고 걸었다.
많은 사람이 다니면 길도 닳지만, 물이 다니는 길은 단숨에 파여 나가는 것을 보며 과연 물의 힘이 세다는 것을 느꼈다. 산책로를 걷다가 발에 걸리는 돌부리와 나무뿌리들이 드러나 보이는 것이 모두 빗물의 힘 때문이라는 것을 실감했다.
산책로를 걷다가 발에 걸리는 돌에 짜증이 날 때도 있었는데, 돌의 입장에서 생각한다면 억울하기 그지없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굴러와 길을 막은 것도 아니고, 본래 땅속 제자리에 있었는데, 비가 올 때마다 흙이 소실되어 드러나게 된 것을 어쩌란 말인가.’
산책로를 따라가다 보면 나무뿌리가 드러난 언덕길이 자연스런 나무 계단처럼 보이는 경우도 있다. 밋밋한 산책로와 비교해 볼 때 훨씬 운치 있어 좋으나 한편으로는 걱정이 되기도 한다. 저렇게 뿌리를 드러내 놓고도 나무가 살 수 있을까?
아닌게 아니라 심하게 뿌리가 드러난 나무들은 영양 상태도 좋아 보이지 않고, 기초가 부실한 건물처럼 곧 쓰러질 듯이 보이기도 한다. 어떤 나무들은 서 있지만 버섯을 재배하는 통나무 기둥처럼 줄기 전체에서 흰 버섯이 자라고 있는 경우도 있고, 나무등치가 꺾여 쓰러져 있는 것도 보인다.
사람이 다니면 길이 나고, 길이 나면 자연히 나무들에게는 좋을 리가 없다. 그래도 산악회 사람들이나 구청에서 ‘산을 쉬게 해 줍시다’라는 구호를 내거는 것일 것이다.
비가 오는 개화산은 나무와 풀의 향기가 더욱 진해지고, 다니는 사람이 현저하게 줄어들어 조용해서 좋은 점도 있지만 너무 적막해진다. 비 오는 숲 속 길을 우산을 받고 걸어가면 으스스 느낌이 들기도 한다. 더구나 개화산은 풍산 심씨 문정공파 가문의 오래된 무덤들이 줄지어 있고, 요소요소에 크고 작은 무덤들이 즐비하다.
고색창연한 비석과 석물들이 잘 갖추어져 있는 것으로 보아 옛날 한 시대를 풍미했던 집안임에 틀림없어 보인다. 오솔길이 굽어지는 곳곳에는 제법 큰 바위가 있는데, 마치 전설의 고향에서처럼 바위 뒤편에서 소복한 여인네나 인간으로 변신한 구미호가 나올듯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한번은 정말로 소스라치게 놀란 적이 있다. 내 시야에서 굉장히 빠른 속도로 숲 속을 가로질러 지나가는 것이 얼핏 보였기 때문이다. 짐승의 속도도 아니고 정말 새가 전속력으로 날아가는 속도로 숲 속 저편에서 무엇인가가 지나간 듯 보였다. 그 당시에는 귀신의 속도라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았다.
정신을 가다듬고 다시 생각해 보니 무심결에 우산을 돌리다가 우산을 묶는 끈이 휙 돌아가며 시야에 잡힌 것이었다. 부끄러운 생각이 들기보다는 식은땀이 흐르며, 다음부터는 비 오는 날에는 산에 오지 말아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비 오는 숲속 길을 우산을 쓰고 가는 내 모습을 멀리서 누군가가 보았다면 그 모습이 괴기스러웠을지도 모른다. 우산을 쓰지 않고 비옷을 입고 산행을 했다면 그런 일이 없었을 텐데, 아무튼 넓은 길로 나온 후 가끔 약사사 신도들이 타고 오는 승용차들도 지나가고 아주 가끔 인기척이 들리니 오히려 반가운 생각이 들었다.
산에 와서도 사람이 있는 것이 좋고, 아주 적막한 것보다는 자동차 소음과 사람 소리를 들어야 안심이 되는 나에게는 속세에 묻혀 세속에 물들어 사는 생활이 더 체질에 맞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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