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단전호흡이나 단학, 단리란 말을 들어보지 못한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러나 이렇게 흔하게 입에 오르내리는 ‘단전’이란 말의 뜻을 제대로 아는 사람은 얼마 되지 않는다. 단전은 무엇인가.
◇ 단(丹)
단이란 ‘붉다’는 뜻이다. 단은 단순히 색깔이 붉다는 것이 아니라, 불 밝음 빛 등을 형상화한 말이다. ‘불’은 단순히 타오르는 ‘불’만을 의미하지 않고 보다 깊은 뜻으로 쓰여 졌다. ‘불알’이라는 말을 생각해보자. ‘불의 알’이란 뜻이다. 불의 알, 생명의 씨앗에서 생명이 기원되는 것이다. 해서 우리 선인들은 다음과 같이 읊었다. ‘아버님 날 낳으시고, 어머님 날 기르시니….’
어렸을 때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어머님이 낳고 아버님이 돈을 벌어와 생활을 유지하고 있는데’라고 생각하고 이 시 구절이 잘못됐다고 생각했었다. 우리 조상들은 ‘불알’에서 생명의 씨앗이 자라고, 그 생명의 씨를 뿌려 사람으로 탄생하게 한 것이 아버지이므로 아버지가 날 낳았다고 표현한 것이라 생각된다. ‘불의 알’이 자라 너와 내가 된 것이다. 다시 말해 인간은 ‘불’이 자란 것이므로 본래 밝고 환하고 빛나는 존재인 것이다.
이렇게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불’을 생명의 기운을 뜻하는 말로 생각해 왔다. 불은 ‘하늘 깊은 곳으로부터 오는 원초적 생명의 빛’을 말하며, 생동력으로 전달되어 오는 기의 파장을 말한다. 현상계에선 태양으로 나타나며, 이의 속성으로 빛, 밝음, 생명 등을 생각할 수 있다. 태양이 없으면 만물이 자랄 수도, 열매를 맺을 수도 없다. 빛이 없는 세계를 생각해 보자. 행동에 지장이 있을 뿐 아니라 자연의 생장법칙 자체가 무너지는 것이다. 식물도 살 수 없고 그 식물을 먹고 사는 동물도 살 수 없으니 생명자체가 존재하지 못한다.
이처럼 ‘불’이 없으면 자연계에서 생명이 존재할 수 없듯이, 소우주인 인체 내에도 ‘불’이 있어야 한다. 화력이 좋다고 자랑하는 사람도 있고, 불기운을 거의 다 써 기진맥진하거나, 정력이 빠졌다고 의기소침 하는 사람도 많다. 사람의 몸에 있어서 불은 어디 있는가?
마음의 등불 또는 심화(心火)라는 말처럼 마음이 바로 불이다. 마음이 밝으면 얼굴이 환하고, 근심걱정이 많은 사람은 안색이 어둡다고도 한다. 잡념이 많아 구름이 태양을 가리듯, 마음을 가리면 몸 전체에 구름이 끼여 어두워진다. 밝은 마음이란 잡념이나 근심거리가 없이 그늘이 없는 마음이다. 단(丹)이란 이런 밝은 마음에서 나오는 생명의 기운을 의미하는 것이다.
◇ 밭(田)
씨를 뿌려 곡식을 키우는 곳이 밭이다. 농부는 아무 밭이나 가리지 않고 씨를 뿌리지 않는다. 싹이 잘 트고 열매를 잘 맺을 밭에다 씨를 뿌리고, 그런 밭이 되도록 밭을 잘 돌본다.
우선 밭이 어떤 상태인지 알아보고 씨를 뿌린다. 성경에도 나오는 것처럼 씨가 자갈밭이나 모래밭 또는 길가에 떨어지면 씨는 싹이 잘 트지 않는다. 설혹 씨가 싹이 터도 잘 자랄 수 없고, 다 자라 열매를 맺기는 어렵다. 우리 단전의 상태가 자갈밭인지 길가인지 풀 섶인지 생각해 보자. 밭이 씨앗이 자라기에 좋지 않으면, 다른 밭을 찾아본다. 다른 밭을 찾을 수 없을 때에는 곡식이 잘 자랄 수 있도록 개간을 한다. 밭을 갈고 엎기도 하고 거름을 주기도 하고 돌멩이를 골라내기도 한다.
우리 몸의 상태가 행공을 하기에 좋지 않다고, 몸을 다른 건강한 사람과 바꿀 수는 없다. 행공하기 좋아지도록 밭을 개간해야 한다. 너른 황무지를 한꺼번에 개간하지 않고 능력에 맞춰 차츰 개간하듯, 무리하지 않고 조금씩 개간하다 보면 전체적으로 다 농사짓기 좋은 밭으로 만들 수 있듯, 우리 몸도 차츰 조금씩 바꿔야 한다.
밭이 잘 개간 되었더라도, 밭의 상태에 따라 씨가 싹이 트거나 아니면 그대로 말라 죽거나 썩어 버릴 수도 있다. 물기가 너무 많은 진 밭이면 씨가 썩어 버릴 것이요, 물기가 너무 없는 마른 밭이면 씨가 말라 버릴 것이다. 거름이 너무 없어도 잘 자랄 수 없고, 거름이 너무 많아도 싹은 잘 자라지 못한다. 삼동 겨울의 밭처럼 꽁꽁 얼어붙은 밭에 씨를 뿌리면 씨는 절대로 싹이 트이지 않을 것이다.
편안하되 축 늘어져 맥이 빠져있어도, 욕심으로 화기가 성해 입이 바짝바짝 타도 수련이 안 된다. 배가 고파도 배가 불러도 수련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 긴장하여 몸이 경직되어도 수련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
따라서 자신의 밭의 상태가 어떤 상태인지 점검해 보고 수련을 해야 한다. 행공하기 전에 기혈 순환 유통법을 하는 것은 바로 밭을 갈고 거름을 주어 씨를 뿌리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기 위한 것이다. 귀찮다고 밭을 갈지도 않고 씨를 뿌리는 농부가 없는 것처럼, 행공하기 전에는 꼭 몸을 풀어 주어야 한다. 또 아무리 좋은 밭이라도 씨만 뿌리고 돌보지 않으면 잡초만 무성하게 된다. 좋은 밭을 만들고 적당한 때에 씨를 뿌리고, 싹이 터 잘 자라도록 항상 신경을 써서 돌봐주어야 알찬 열매를 맺을 수 있다.
◇ 단전
마음은 씨요, 밭은 몸이다. 마음과 몸이 만나 하나로 되는 곳이 바로 단전이란 의미다.
씨는 밭에다 뿌리를 내리고 싹이 트고 줄기가 자라고 꽃이 피어 열매를 맺는다. 밭이 모든 일의 시초요 기초인 것이다. 이처럼 우리가 기혈 순환 유통법을 비롯하여 모든 행공을 할 때에도, 단전이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숨을 들이 마시고 단전에 은은한 기운을 모아서 단전에 중심을 잡고 수련을 해야 한다. 몸을 좌우로 틀어주거나 앞뒤로 움직이는 동작을 할 때에도, 단전부터 먼저 움직여야 한다. 씨가 밭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처럼 모든 움직임의 출발점은 단전이 되어야 한다. 힘을 주어 어깨부터 움직이지 말고, 단전부터 차례대로 움직여야 한다.
단전은 기운의 중심이다. 이 말은 모든 운동을 할 때에는 단전에 기운을 모은 연후에 하라는 뜻이다. 단전에 중심을 잡고 수련을 하지 않는 것은, 마치 저수지에 파이프를 연결하지 않고 펌프질 하는 것과도 같다. 펌프질을 많이 하면 할수록 헛바퀴만 돌아가고, 나중에는 펌프만 고장 나게 된다. 밭에다 뿌리를 내리고 그 뿌리에서 물과 영양분을 끌어올려 가지나 잎으로 보내서 곡식이 자라는 것처럼, 달리기나 기타 다른 운동을 할 때에도 단전에 중심을 잡고 해야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
뿌리에서 영양분을 끌어 올리지 않고 잎에서 하는 광합성 작용에만 의지하면, 그 식물은 얼마 못가서 죽게 된다. 뿌리가 잘리거나 줄기가 부러진 나무가 죽는 것처럼, 운동선수들이 젊었을 때에는 괜찮다가도, 나이가 들면서 보통 사람보다도 몸이 더 망가지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단전에 기운을 모으고 운동을 하면, 단전의 기운이 움직이는 부위로 흘러가 기운을 보충해 준다. 움직일수록 더 기운이 나고 몸이 좋아지게 된다.
◇ 농부의 역할
농사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바로 씨를 뿌리는 것이다. 기타 다른 모든 것을 하더라도, 씨를 뿌리지 않으면 싹이 트고 자랄 수 없다. 씨가 썩든 조그마하게 자라다 죽든 간에 씨를 뿌리지 않으면 시작조차 없는 것이다. 씨를 밭에 뿌려야 싹이 트고 열매를 맺을 수 있다. 몸만 풀고 행공을 하지 않으면 기운이 자랄 수 없는 것이다.
씨를 뿌리되 제대로 뿌려야 한다. 행공 시 단전에 정신을 집중하지 않으면 기운이 모이고 자랄 수가 없다는 뜻이다. 마음을 단전에 모으는 것이, 밭에 씨를 뿌리는 것이다. 잡념이 들어 딴 생각을 하면 단전으로 기운이 가지 않고, 그 생각하는 곳으로 기운이 흘러가게 된다. 단전에 정신을 집중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마지막으로 농부의 역할을 생각해 보자. 농부는 씨가 잘 자라도록 환경을 조성해 줄뿐, 그 이상의 일은 할 수가 없다. 싹이 트라고 씨를 반으로 잘라 싹을 끄집어 낼 수도 없고, 빨리 자라라고 줄기를 잡아당길 수도 없다. 농부는 씨가 잘 자랄 수 있도록, 밭을 갈고 거름을 주고 물을 주고 때로는 너무 강한 햇빛도 가려 주고 김을 매 주는 일을 할 수 있을 뿐이다. 싹이 트고 자라서 열매를 맺는 것은 자연의 법칙이다. 자연의 법칙을 믿고 씨가 잘 자라 열매를 맺을 환경을 최대한 조성해 주는 것이 농부의 역할이다.
우리가 단전 행공을 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억지로 힘을 주어 배를 많이 내밀고 숨을 많이 마시고 오래 참는다고 기운이 모이는 것은 아니다. 기운이 잘 모이도록 마음과 몸을 잘 가다듬어 줄 수 있을 뿐이다. 씨를 뿌리고 싹이 터 잘 자랄 수 있도록 해주면 좋은 결실을 맺는 것이 농사의 원리라면, 몸의 자세와 마음의 자세를 잘 갖추고 단전에 정신을 집중하면 생명의 기운이 모이고 자라 왕성해진다는 것이 단전 행공의 원리다.